『율리시즈』를 읽으셨나요? 저는 읽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뜯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름 자체를 외면했는데, 이번에 『하숙집』이라는 단편소설을 집어 들고 나서 그 편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술술 읽혔고, 읽고 나서 한참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더블린 사람들과 자연주의 리얼리즘

『하숙집』은 단독 작품이 아닙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1914년에 발표한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15편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율리시즈』의 그 난해함만 기억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구조가 단단하고 결말이 깔끔하게 열린 단편을 썼다는 게 낯설었습니다.
여기서 자연주의 리얼리즘이란,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 환경을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문학 기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영웅도, 악당도 없이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방식입니다. 『하숙집』은 이 기조가 가장 짙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꼽히는데, 저도 읽으면서 그 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무니 부인이 도란 씨를 결혼으로 옭아매려는 계획을 식칼로 고기 자르듯 처리하는 장면은, 악의도 없고 감정 과잉도 없이 그냥 현실이었습니다.
조이스는 더블린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아일랜드 사회를 냉철하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이 단편집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조국 아일랜드에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집니다. 하숙집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체면 지키기, 그리고 침묵 속의 공모는 그 시대 더블린 사회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숙집』에서 주목할 만한 서사 기법으로는 에피파니(epiphany)가 있습니다. 에피파니란 조이스가 즐겨 사용한 기법으로,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에서 인물이 갑작스럽게 진실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독자는 결말에서 도란 씨가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을 통해 그 에피파니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결말이 애매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열린 결말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읽은 이북 판본에는 『하숙집』 외에도 2편이 더 수록되어 있었는데, 나머지 작품들은 『더블린 사람들』 수록작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번역 문장은 간결하고 읽기 편했습니다.
『하숙집』에서 문학적으로 살펴볼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연주의 리얼리즘 기법으로 인물의 심리를 과장 없이 묘사
- 에피파니 기법으로 열린 결말 구성
- 모더니즘 문학의 특징인 내면 독백(interior monologue) 활용
- 더블린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계층 구조를 간접적으로 비판
- 침묵과 암묵적 공모를 통해 서사를 끌어가는 독특한 구성
제임스 조이스와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
제임스 조이스는 188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습니다. 무능한 아버지 탓에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잦은 이사와 학업 중단을 반복했습니다. 그럼에도 12세에 스스로 문법 학교 입학을 청원했고, 18세에 이미 습작을 발표하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가난이 재능을 막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모더니즘 문학이란, 20세기 초 전통적인 서사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 의식과 주관적 경험을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려 한 문학 운동을 말합니다. 조이스는 이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특히 『율리시즈』에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을 극단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의식의 흐름이란 인물의 머릿속을 흐르는 생각과 감각을 논리적 순서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율리시즈』를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고통스러운 독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숙집』은 다릅니다. 조이스의 개성은 분명히 살아있으면서도 이야기의 뼈대가 훨씬 선명합니다. 무니 부인 시점과 도란 씨 시점을 교차하며 같은 일요일 아침을 두 번 보여주는 구성은,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인물 각각의 불안과 계산을 입체적으로 드러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중 시점 구성은 단편에서 특히 어렵고, 그걸 이렇게 자연스럽게 해내는 작가가 거장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20세기 영문학 연구자들은 조이스를 두고 "더블린을 떠난 적 없는 작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는 아일랜드를 떠나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지만, 그의 모든 작품은 더블린에서 출발하고 더블린으로 돌아옵니다. 아일랜드 문학에 대한 학술적 분석과 조이스 연구는 현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더블린 제임스 조이스 센터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출처: 제임스 조이스 센터).
조이스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영국 문화원(British Council)의 현대 문학 아카이브에서도 별도로 다루고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은 지금도 인정받고 있습니다(출처: British Council Literature).
『율리시즈』로만 조이스를 알고 있던 저는, 『하숙집』을 읽고 나서 『더블린 사람들』 전체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싶을 정도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단편소설이 결말이 애매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고, 중장편보다 스토리의 폭이 좁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중장 편 소설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하숙집』만큼은 그 짧음이 오히려 강점이었습니다. 결말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결말을 완전히 알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이 작품이 거장의 손에서 나온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율리시즈』에 지쳐 조이스를 멀리하고 있었다면, 『하숙집』이 좋은 재입문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짧고, 명확하고, 그러면서도 읽고 나서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더블린 사람들』 전체로 넘어가고 싶어 졌다면, 그건 이 단편이 제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