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학창 시절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이게 '필독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약혼자 있는 여자를 짝사랑하다 자살한다는 이야기가 고전명작으로 읽힌다는 게 납득이 안 됐거든요. 그런데 수십 년 뒤 다시 펼쳤을 때, 같은 책이 완전히 다르게 읽혔습니다. 그 차이가 뭔지, 그리고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된 독서가 되는지 나눠보겠습니다.
베르테르가 자살한 이유는 실연이 아니었다

이 소설은 서간체 소설(epistolary novel)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간체 소설이란 주인공이 쓴 편지들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형식을 뜻하는데,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독자는 베르테르의 필터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게 됩니다. 알베르트가 지루하고, 로테의 남편감으로 부족하다는 생각도 전부 베르테르의 주관입니다. 저는 처음 읽었을 때 이 점을 놓쳤고, 베르테르의 시선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제가 이 소설을 오독했던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베르테르는 단순히 실연당한 청년이 아닙니다. 그는 신분 사회의 위선을 혐오하고, 관료 조직의 형식주의에 질려 사표를 던지고, 귀족 파티에서 '분수를 모른다'는 이유로 쫓겨납니다. 괴테가 이 작품을 쓴 것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뒤흔들던 18세기 유럽이었습니다. 당시 신흥 시민 계층은 능력이 있어도 신분의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했고, 베르테르는 그 세대의 감수성을 압축한 인물입니다. 로테를 향한 사랑은 그 좌절의 출구이자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것이고, 그마저 막히자 무너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출간 직후 유럽 청년들 사이에 번진 모방 자살 현상,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는 단순한 감정 이입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이나 소설 속 인물의 자살이 대중에게 전파되어 유사한 자살을 유발하는 사회적 전염 현상을 뜻합니다. 당시 각국 정부가 이 책의 판매를 금지했을 정도였는데, 청년들이 베르테르에게서 자기 자신을 본 것은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시대적 억압에 대한 공명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출처: 독일 괴테협회 공식 사이트).
베르테르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핵심 갈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성 대 이성: 열정적으로 느끼는 베르테르 vs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알베르트
- 개인 대 사회: 자기 방식대로 살고 싶은 욕구 vs 신분과 관습이 요구하는 타협
- 자유 대 구속: 로테를 향한 순수한 감정 vs 약혼이라는 사회적 계약
어른이 되어서야 읽히는 것들
저는 학창 시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로테를 동경했습니다. 총명하고 아름다우며 동생들을 돌보는 따뜻한 여성, 베르테르가 사랑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로테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베르테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베르테르"라고 부르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키스까지 나눴습니다. 나중에는 여행이나 다녀와서 다른 여자를 찾으라고 권하기도 했고요. 250년이 지난 지금도 로테에게 안티가 많은 이유가 바로 이 어정쩡한 태도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관계에서 가장 힘든 쪽은 항상 더 많이 사랑하는 쪽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서야 로테의 입장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를 잃고 동생 여섯을 돌보며, 어머니의 유언대로 알베르트와의 결혼을 받아들인 여성입니다. 베르테르와의 교감이 진짜였다 해도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건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여성의 제한된 자기 결정권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도덕성으로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괴테 자신도 이런 이중성을 살았습니다. 그는 25세에 실제 짝사랑과 친구의 자살 경험을 녹여 이 소설을 4주 만에 썼습니다. 자전적 원체험(autobiographical experience)이란 작가 자신의 실제 삶의 경험이 작품 창작의 직접적 동기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 베르테르의 감정이 이렇게 생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괴테 본인은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을 씀으로써 그 감정을 통과했습니다. 그 차이가 중요합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를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카타르시스란 억압된 감정이나 충동을 예술이나 표현 행위를 통해 안전하게 해소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괴테는 베르테르를 쓰면서 자신의 절망을 글 밖으로 꺼냈고, 이후 파우스트를 60년에 걸쳐 완성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 소설이 청소년 필독서로 꼽히는 이유가 단순히 '슬픈 사랑 이야기'여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극단적 감정을 경험하고 그것을 타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훈련, 그게 이 책이 제공하는 독서 경험입니다.
실제로 문학 치료(bibliotherapy) 연구들은 감정이 격한 시기에 강도 높은 감정을 다룬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감정 조절 능력 발달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문학 치료란 책 읽기를 통해 정서적 성장을 도모하고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치료적 접근법을 말합니다(출처: 한국독서치료학회).
결국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 세계가 당신이 원하는 삶을 허용하지 않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베르테르는 타협을 거부했고, 그 결말은 비극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월요일마다 직장에 나가야 했던 저 같은 평범한 삶이 더 옳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책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는 점입니다. 학창 시절에 한 번, 어른이 되어 한 번, 두 번 읽을 가치가 충분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