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내 삶이 이렇게 된 건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떠밀려온 것인지. 저는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를 다시 펼칠 때마다 그 질문이 되살아납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을 1~2년에 한 번씩 다시 읽는데, 읽을 때마다 밑줄 긋는 곳이 달라집니다. 그만큼 이 책은 나이가 들수록 다르게 읽힙니다.
자기 서사 — 한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방식
필립 케어리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발이 기형이었습니다. 아홉 살에 부모를 모두 잃고 낯선 백부 부부 손에 맡겨졌으며, 기숙학교에서는 불구를 이유로 집요하게 놀림을 받았습니다. 이런 서사 구조를 문학 용어로 빌트둥스로만(Bildungsroman)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빌트둥스로만이란 한 인물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내면적 성장을 추적하는 성장소설 장르를 가리킵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가 원형으로 꼽히고, 《인간의 굴레》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필립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그가 거듭 실패를 선택한다는 점입니다. 수석 졸업이 보장된 학교를 뛰쳐나와 독일로 가고, 다시 파리에서 그림을 배우다 접고, 회계사 사무소를 그만두고, 주식에 전 재산을 날립니다. 바깥에서 보면 한 우물을 못 파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선택들을 읽으면서 공감이 됩니다. 뻔하게 정해진 길을 걷는 것보다, 틀리더라도 직접 밟아보고 싶은 마음. 그게 필립의 자기 서사를 이끄는 동력입니다.
페르시아 양탄자 — 삶의 의미를 묻는 가장 오래된 질문
소설 속에서 필립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은 크론쇼입니다. 파리의 술집을 전전하며 시를 쓰고 글을 기고하는 이 사람은, 어느 날 필립에게 페르시아 양탄자 하나를 선물로 보냅니다.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이 양탄자 안에 답이 있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필립은 한참 뒤에야 그 말을 이해합니다. 직조공이 정교한 무늬를 짤 때 목적은 오직 자신의 심미적 만족입니다. 외부의 인정도, 불멸의 가치도 아닙니다. 삶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철학 용어로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라고 합니다. 여기서 내재적 가치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가치, 즉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너무 추상적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읽으면서 조금씩 몸으로 느껴지더군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내려오면, 지금 이 순간도 무늬의 일부라는 감각. 그게 이 책이 반복해서 읽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크론쇼는 결국 런던에서 비참하게 죽습니다. 간경변증(liver cirrhosis)에 걸린 채로도 술을 놓지 않았습니다. 간경변증이란 간 세포가 지속적인 손상으로 섬유화 되어 정상 기능을 잃어가는 만성 질환입니다. 의학을 공부하던 필립은 그를 처음 봤을 때 이미 병세를 알아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크론쇼의 죽음 앞에서 필립은 다시 묻습니다. 어떤 원리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결국, 원리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는 데 이릅니다.
삶의 무늬 — 실패와 결핍이 직조하는 것
이 소설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들었던 부분은 필립이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장면입니다. 전 재산을 주식으로 날리고, 방세도 못 내고, 이틀을 굶으며 템즈강 벤치에서 잠을 자는 그 장면. 그때 남은 2펜스를 유료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데 쓰고 애 설 리 가족을 찾아가는 필립의 행동이 읽는 내내 뭉클했습니다.
필립이 결핍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애설리 가족처럼 조건 없이 곁에 있어준 사람들 때문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책으로 쌓아온 내면의 언어 때문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릅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역경이나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 다시 제 기능을 회복하고 적응해 나가는 심리적 능력을 말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고 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필립의 삶을 돌아보면, 실패한 순간들이 오히려 무늬를 더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 킹즈 스쿨에서 받은 조롱은 쓰라린 자의식을 남겼지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의사를 만들었습니다.
- 밀드레드에 대한 집착은 가장 비이성적인 사랑의 민낯을 보여줬지만, 그 고통이 지나고 나서야 샐리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 파리에서의 2년은 화가로서는 실패였지만, 미술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면 실패가 아니라 재료들입니다. 양탄자의 씨실과 날실처럼.
독서추천 —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인간의 굴레》는 상·하권 합쳐 1,000페이지가 훌쩍 넘습니다. 국내에는 민음사에서 출간되어 있으며, 원제는 《Of Human Bondage》입니다.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이 1915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autobiographical novel)의 성격을 강하게 띱니다. 자전적 소설이란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허구의 인물과 사건을 구성한 소설 형식을 뜻합니다. 몸 자신도 발에 장애가 있었고, 고아로 자랐으며, 의학교를 다녔습니다.
처음 읽는 분께 드리고 싶은 조언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필립의 선택에 답답함을 느껴도 그냥 따라가 보십시오. 그 답답함이 나중에 이해로 바뀌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 밀드레드 파트는 길고 소모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부분을 견뎌야 페르시아 양탄자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 한 번에 쭉 읽기 어려우면 필립의 나이 변화를 이정표로 삼아 나눠 읽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훨씬 더 많이 울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소설은 내가 몇 살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책이 됩니다. 20대에는 필립의 방황이 공감됐고, 30대에는 루이자 백모의 사랑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어떤 나이에 읽어도 그 나이에 맞는 문장이 꼭 한 줄씩 찌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무늬를 짜고 있습니까. 저는 이 질문을 이 소설을 덮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정답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직조공도 다 짜고 나서야 무늬의 전체를 봅니다. 아직 짜는 중이라면, 그건 아직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굴레》가 무인도에 가져갈 책 목록에 들어가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삶이 지겨워지거나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이 책은 조용히 옆에 앉아 같이 걸어주는 느낌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