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처음부터 있다고 할 것도 아니요, 없다고 할 것도 아니다." 루쉰이 단편소설 '고향'의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이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눈 내린 겨울날 삼태기로 새를 잡던 어린 시절 고향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까지 그려봤습니다. 고향이라는 단어 하나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놓습니다.

루쉰는 왜 의사를 포기하고 펜을 들었을까
루쉰는 1902년 청나라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고분학원(弘文學院)에 입학합니다. 여기서 일본어와 과학 기초를 익힌 뒤, 1904년 센다이 의학 전문학교, 지금의 도호쿠 대학 의학부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1906년 의학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도쿄에서 문학의 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루쉰 본인의 기록에 따르면, 병든 몸을 고치는 것보다 병든 정신을 깨우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은 청나라 말기의 혼란 속에 있었고, 루쉰는 문학이야말로 민중의 의식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결정이 없었다면 중국 근대문학(近代文學)이라는 장르 자체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근대문학이란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각성과 사회 비판을 주제로 삼는 새로운 문학 흐름을 의미합니다.
1909년 귀국 후에는 교사로 근무하다가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중화민국 임시정부 교육부 관리로 15년간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신해혁명이란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을 세운 혁명으로, 루쉰의 문학적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루쉰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이 시대와 얼마나 치열하게 맞부딪힐 수 있는지 그 무게가 느껴집니다.
룬투라는 이름이 불러오는 것들
소설 '고향'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는 장면은 역시 룬투와의 재회입니다. 어린 시절의 룬투는 붉은 얼굴에 은 목걸이를 걸고, 보름달 아래 수박밭에서 쇠창을 들고 너구리를 쫓는 용감한 소년이었습니다. 주인공 '나'에게 조개 줍는 법, 새 잡는 법을 신나게 들려주던 그 아이 말입니다.
그런데 20년 만에 다시 만난 룬투는 달랐습니다. 누렇게 변한 얼굴, 소나무 껍질 같은 손, 다 떨어진 털모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으리"라는 한마디.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신분의 벽 같은 것이 없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계급적 거리가 생겨버린 것입니다.
루쉰은루쉰는 이 장면을 통해 봉건적 신분 질서(封建的 身分秩序)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봉건적 신분 질서란 태어난 계층에 따라 사람의 역할과 위치가 고정되는 사회 구조로, 루쉰는 바로 이것이 중국 근대화를 막는 핵심 장벽이라고 보았습니다. 룽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주인공이 속으로 비웃는 장면도 있는데, 제 경험상 그 감정은 사실 독자 자신이 먼저 반성해야 할 지점입니다. 루쉰는 독자를 그렇게 슬쩍 찌릅니다.
루쉰의 주요 작품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18년: '광인일기' 발표 — 중국 최초의 현대 백화문 소설
- 1921년: '아Q정전' 발표 — 민중의 정신적 패배주의를 날카롭게 비판
- 1921년: '고향' 발표 — 기억과 현실 사이의 간극, 희망의 의미 탐구
- 1924년: 산문시집 '야초' 발표 — 루쉰의 내면 세계가 가장 깊이 담긴 작품
고향이라는 공간이 가진 두 개의 얼굴
고향에 대해 물어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곳"이라고 먼저 대답합니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으냐고 따지면 쉽게 말을 잇지 못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도 그렇게 말합니다. 꼭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생각만으로도 좋은 곳이 고향이라고.
저는 교통이 좋아진 지금도 선뜻 발길이 닿지 않는 고향이 있습니다. 이미 조상님들의 산소만 남아 있을 뿐이고, 제가 뛰어놀던 자리는 다 바뀌어버렸습니다. 몸은 오래전에 떠났어도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 언덕이 남아 있습니다. 루쉰의 주인공이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느끼는 그 서늘한 이물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서정적 자아(抒情的 自我)와 비판적 시선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고향'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서정적 자아란 감정과 기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화자의 내면 목소리를 뜻하는데, 루쉰는 이 서정성을 앞세우면서도 동시에 농민을 짓누르는 세금과 착취, 봉건 질서라는 냉혹한 현실을 놓치지 않습니다. 감성과 이성이 한 문장 안에 공존하는 구조입니다.
중국 현대문학 연구에서 루쉰은 계몽주의 리얼리즘(啓蒙主義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계몽주의 리얼리즘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되, 독자의 의식 각성을 목표로 하는 문학 방법론입니다. 루쉰 문학의 사상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중국 현대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폭넓게 인정되고 있습니다(출처: 중국 국가도서관).
희망은 길처럼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향'의 마지막 문장은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명구로 남아 있습니다. "희망이란 땅 위에 나 있는 길과 같다. 원래 땅 위에 길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이 다니면서 길이 생겨난 것처럼 희망도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이 문장 앞에서 저는 한참 멈추게 됩니다. 룽투가 향로와 촛대를 가져간 것을 주인공이 속으로 비웃다가 스스로 반성하는 장면, 기억하시나요? 그 반성의 끝에 이 문장이 나옵니다. 막연한 희망이든, 절실한 기도든, 희망을 품는 행위 자체는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위로의 말처럼 읽혔는데, 다시 보니 루쉰이 독자에게 던지는 행동 촉구였습니다.
백화문(白話文)으로 쓰인 '고향'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백화문이란 일반 민중이 실제로 쓰는 구어체 중국어를 문장으로 옮긴 것으로, 한문(漢文) 위주의 기존 문어체에서 탈피해 더 많은 독자가 문학을 접할 수 있게 한 문체 혁명이었습니다. 루쉰이 '광인일기'(1918년)에서 처음 이 방식을 채택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 한국연구재단의 중국문학 관련 연구 자료에서도 루쉰의 백화문 도입이 동아시아 근대 문학 전반에 미친 영향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연구재단).
루쉰의 '고향'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단순히 잘 쓴 소설이어서가 아닙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의 감각, 오래된 친구와 사이에 생겨난 이름 모를 거리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길을 바라는 마음. 이 감정들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루쉰를 읽지 않으셨다면, 4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이 단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겨울날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펼쳐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