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살다 보면 문득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도 잊게 되는 날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오래된 단편소설 하나를 우연히 접하고서 그런 질문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190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단편 『등대지기』,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진 시대, 그 안에서 쓰인 소설
『등대지기』는 1882년 미국에서 발표된 작품입니다. 작가 시엔키에비치가 1870년대 미국 특파원으로 체류하던 시절, 고국을 잃고 이국 땅에서 고된 생계를 꾸려가는 폴란드 동포들의 삶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작품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18세기 후반부터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국토가 세 차례에 걸쳐 분할되었고, 결국 지도에서 국가명 자체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이를 역사학에서는 폴란드 분할(Partition of Poland)이라고 부릅니다. 폴란드 분할이란 18세기 후반 세 강대국이 폴란드 영토를 조각내어 각자 병합한 사건으로, 이후 약 123년간 폴란드는 독립 국가로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시엔키에비치 자신도 나라 이름이 지도에 없는 채로 태어났고, 독립을 2년 앞둔 1916년 스위스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 배경을 알고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 스카빈스키 노인의 무게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파나마 운하 인근 아스핀월의 무인 등대에 홀로 부임하는 칠십 노인의 이야기인데, 그는 단순히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40년을 정처 없이 유랑한 끝에 겨우 정착한 사람입니다. 고향 땅에서 이방인처럼 자란 게 아니라, 아예 고향 땅이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떠돌아온 사람입니다.
이 작품은 또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고립된 환경 속 노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는 점에서, 계보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등대지기』가 갖는 문학사적 위치를 짚는 연구들도 이 지점에서 자주 출발합니다(출처: 한국문학번역원).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스카빈스키 노인이 폴란드 협회에서 보내온 소포를 받는 장면입니다. 그 안에는 폴란드 시인의 시집이 들어 있었고, 노인은 모국어로 적힌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결국 등대 불을 켜는 직무를 잊어버립니다. 나라 이름조차 없는 땅을 고향으로 두고 4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 모국어로 된 시집이 도착했을 때의 감정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저는 일제강점기에 고국을 떠나 타국 생활을 하셨던 분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분들도 언어 박탈(Language deprivation)과 정체성 상실의 고통을 동시에 감내하셨을 겁니다. 언어 박탈이란 모국어를 사용할 권리나 기회를 빼앗기는 상태를 말하는데,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를 구성하는 근간을 잃는 경험입니다.
『등대지기』를 읽으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카빈스키 노인이 파면당하면서도 시집만큼은 품에서 놓지 않는 마지막 장면이 그냥 서사적 마무리가 아니라, 언어가 곧 정체성이라는 메시지로 읽혔습니다.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도 이 소설 앞에서 멈추게 되는 이유
솔직히 저는 향수(鄕愁)라는 감정이 크지 않은 편입니다. 향수란 고향이나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데, 제게 유년기는 그리움보다는 트라우마(trauma)에 가까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트라우마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준 경험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릴 때 우연히 읽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속 재재가 부러웠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이 공간, 제가 선택해서 만든 이 가정이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태어난 집에서 이방인처럼 자랐으니,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도 생겼고요. 제가 직접 경험해 본 바로는, 고향이 편안한 기억이 아닌 사람에게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오히려 더 강렬한 귀속감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카빈스키 노인의 이야기는 저도 멈추게 했습니다. 어쩌면 고향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자기를 이루는 언어와 정서의 뿌리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한국어로 구성된 정서, 한국 문화 안에서 형성된 감각이 제 안에 있고, 그게 어느 순간 건드려지면 울컥하는 경험을 합니다.
이 소설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가나 언어를 잃는 경험이 개인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초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 고향이나 민족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를 감상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직무 태만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현실적 비극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노스탤지어란 과거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현재를 압도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 언어와 문학이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감각을 유지시키는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문화적 동화와 정체성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이 모국어에 노출되는 빈도는 심리적 안정감 및 자아 통합감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출처: 국립국어원). 스카빈스키 노인이 시집 한 권에 무너진 것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40년 동안 억눌려 있던 정체성의 귀환이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등대지기』를 단순히 "슬픈 이야기"로 읽으면 아깝습니다. 이 소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언어와 정서가 사람을 어떻게 붙들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도, 이 소설 앞에서 한 번쯤 자기 안에 있는 뿌리를 들여다보게 되지 않을까요.
한 번 차분하게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짧은 단편이라 한 번 앉으면 끝까지 읽게 됩니다. 그리고 읽고 나서 한동안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쓸리는 느낌이 남을 겁니다. 저는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