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저명한 작가 100명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만장일치 선정한 책이 있습니다. 400년 전에 쓰인 스페인 소설 한 권입니다. 대학 문학 수업 과제로 처음 완역본을 손에 쥐었을 때, 그 두께에 솔직히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왜 이 책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감옥 바닥에서 탄생한 풍자문학의 원형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삶은 그 자체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습니다. 레판토 해전에서 부상을 입은 전쟁 영웅이었지만, 귀국길에 해적에게 납치되어 5년간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풀려난 뒤에는 세금 징수관으로 일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을 들락거렸고, 결국 돈키호테의 초고는 바로 그 감옥 안에서 쓰였습니다.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가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시작됐다는 것, 이 아이러니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에너지입니다.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16세기 스페인은 겉으로는 황금의 제국이었지만 속은 심각하게 곪아 있었습니다. 신대륙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국가는 반복해서 파산했고, 순혈주의와 혈통 중심의 사회 구조가 유능한 인재들을 대거 쫓아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돈키호테는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제국 전체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문학(Satirical Literature)으로 읽힙니다. 여기서 풍자문학이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웃음의 형식을 빌려 비판하는 문학 장르를 말합니다.
세르반테스가 심어둔 장치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 치밀함에 놀라게 됩니다. 주인공의 고향인 라만차(La Mancha)는 스페인어로 '얼룩'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가 목숨 바쳐 사랑하는 둘시네아(Dulcinea)라는 이름은 당시 속어로 매춘부를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심지어 책 제목의 키호테(Quijote)는 허벅지를 보호하는 갑옷 부위를 뜻하면서도 나이 든 남자의 무력함을 비꼬는 단어였습니다. 제목 첫 단어부터 독자에게 윙크를 날리고 있는 셈입니다.
돈키호테가 근대 이전의 영웅 서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주인공과 세상 사이의 관계 구조에 있습니다. 신화나 기사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세상의 질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곧 세계가 정의롭다는 증거였습니다. 반면 돈키호테는 세상과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자신이 구해준 갤리선 노예들에게 오히려 두들겨 맞고 가진 것을 다 빼앗기는 장면은, 선의가 반드시 보상받지 못하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현대 소설의 핵심 구조가 된 이유입니다.
돈키호테가 이렇게 새로운 소설 구조를 만들어낸 데는 몇 가지 결정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 주인공이 세상의 질서와 어긋나는 존재로 설정됨
- 기사도라는 특정 영역에서만 광기를 보이고, 그 외에는 깊은 지혜를 갖춘 입체적 인물로 묘사됨
- '미치광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당대 사회를 향한 직접적 비판이 가능해짐
메타소설의 탄생과 살아있는 인물로서의 돈키호테
제가 직접 완역본을 읽어보니, 어릴 때 축약본에서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2부였습니다.
돈키호테 2부에서 주인공과 산초 판사는 자신들의 모험담을 담은 책이 이미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책에 이상하게 묘사됐다며 불평합니다. 이것이 바로 메타소설(Metafiction)의 핵심 기법입니다. 메타소설이란 등장인물이 자신이 허구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작품 자체의 구조를 의식하는 서술 방식을 말합니다. 이 기법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핵심 장치로 20세기 들어 본격화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르반테스가 400년 앞서 이를 실현했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축약본에서의 돈키호테는 그냥 웃기기만 한 인물이었습니다. 완역본의 돈키호테는 다릅니다. 산초 판사가 섬의 통치자가 됐을 때 "부자의 간청보다는 가난한 자의 눈물에 더 많은 연민을 가지도록 하게"라고 조언하는 장면에서, 저는 이 인물이 단순한 광인이 아님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기사도에 관한 것에서만 판단력을 잃을 뿐, 그 외의 영역에서 그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깊습니다.
산초 판사의 존재도 완역본에서야 제대로 보였습니다. 축약본에서 그는 그냥 뚱뚱하고 어리숙한 조력자에 불과했는데, 실제로는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돈키호테의 이상주의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인물입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소설의 또 다른 축입니다.
소설의 서사 구조 측면에서도 돈키호테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습니다. 현대 서사학(Narratology)에서는 돈키호테를 소설이라는 장르가 사실주의적 심리 묘사와 사회 비판을 수용하기 시작한 기점으로 봅니다. 여기서 서사학이란 이야기의 구조와 서술 방식을 분석하는 학문 분야를 말합니다. 노르웨이 작가 연구소와 협력한 노르웨이 북클럽이 전 세계 54개국 100명의 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돈키호테가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한 배경에는 이 구조적 혁신이 있습니다(출처: The Norwegian Book Clubs).
돈키호테의 마지막도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결투에서 패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열병에 걸렸다가 온전한 정신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아닌 본래의 자신,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로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웅적 귀환도, 이상의 실현도 아닙니다. 그 결말이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라도 그것을 꿨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삶을 바꾼다는 것, 그게 이 소설이 400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돈키호테는 소설 장르의 기원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텍스트로,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도 관련 자료가 등재되어 있습니다(출처: UNESCO).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분량의 압박이 분명히 있는 책인데, 다 읽고 나니 두꺼운 이유가 있었습니다. 읽는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산초와 돈키호테가 나누는 대화가 기다려집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꼭 완역본으로 만나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