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에 이름을 올린 소설이 있습니다. 데니스 존슨의 『기차의 꿈』입니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저는 단순한 개인사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읽고 나서 한동안 먹먹함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어떤 책이 이런 여운을 남기는지, 그리고 그 여운이 희망인지 상실인지를 두고 보는 시각이 꽤 엇갈립니다.
한 남자의 생애가 남기는 것 — 상실과 고독의 서사구조
1886년에 태어나 80세를 넘겨 살다 간 로버트 그 레이니어. 소설은 그의 생애를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비선형 서사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전개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를 자유롭게 교차시키는 서술 방식을 말합니다. 덕분에 독자는 그 레이니어의 삶을 한 방향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의 기억 속을 함께 헤매는 것처럼 읽게 됩니다.
소설에서 그레이니어가 경험하는 핵심 사건은 아내 글래디스와 딸 케이트를 화재로 잃는 일입니다. 이후 그는 재를 뒤지며 이름을 부르고, 오두막을 다시 짓고, 개와 함께 계절을 보내며 살아갑니다. 그런 그를 두고 "끝이라 생각했던 순간들이 새로운 시작이었다"고 말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솔직히 그 해석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읽은 건 재생이 아니라 철저한 상실의 축적이었으니까요.
데니스 존슨의 문체적 특징 중 하나는 감정 절제(emotional restraint)입니다. 감정 절제란 등장인물의 내면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행동과 장면 묘사만으로 독자가 감정을 유추하게 만드는 기법을 뜻합니다. 그레이니어가 울고 나서 뜨거운 재 위에 주저앉는 장면, 아내가 손댔을 난로 속의 타지 않은 자작나무 장작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설명이 없어서 오히려 더 아픕니다.
저도 이 소설에서 온통 상실감만 느꼈습니다. 그레이니어는 저축도 없고, 장기적 직업도 없고, 사회적 관계망도 빈약합니다. 그러나 그게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그냥 살았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충실했고, 만나는 사람에게 진실했습니다.
그 레이니어의 삶을 특징짓는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비선형 서사를 통해 기억과 현실이 경계 없이 뒤섞이는 구조
- 아내와 딸을 잃은 후에도 같은 땅에 오두막을 짓고 돌아오는 귀환 반복
- 꿈속 기차 소리와 현실의 스포캔 국제 철도 소리가 겹치는 상징
- 쿠트나이, 안 피플스 등 주변 인물들도 모두 쓸쓸하게 사라지는 구조

기차라는 상징이 무엇을 운반하는가 — 경험과 의견
일본 여행을 할 때 시골의 1량짜리 완행 기차를 자주 탑니다. 제가 직접 타봤는데, 그 덜컹이는 리듬과 창밖 풍경이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한 달 가까이 이명처럼 귓속에 남았습니다. 처음엔 그냥 이국적인 체험이라 여겼는데, 『기차의 꿈』을 읽고 나서는 그 소리의 의미가 달리 다가왔습니다. 그 레이니어에게도 기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을 겁니다.
소설에서 기차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로 기능합니다. 라이트모티프란 작품 전체에서 반복되며 특정 감정이나 주제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요소를 뜻합니다. 그레이니어는 꿈 속에서 기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면 실제로 스포캔 국제 철도의 기차 소리가 계곡을 타고 들어옵니다. 꿈과 현실이 소리로 이어지는 이 구조 덕분에 기차는 그의 삶 전체에서 연속성의 매개가 됩니다. 어린 시절 혼자 기차를 타고 아이다호로 왔고, 결국 잠든 채 죽어 간 그의 삶을 처음과 끝에서 감싸는 것도 기차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과거의 장면들을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글래디스와 케이트와 함께 사르사(sarsaparilla)를 마시던 순간, 기억조차 없는 유년기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그레이니어가 자신의 삶을 처음으로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순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가 착지하면 그 감각은 사라집니다. 삶의 전모를 보는 건 순간뿐이고, 다시 현실로 내려오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처럼 읽혔습니다.
나이 든 남자가 읽으면 더 가슴을 후벼파는 소설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 경험상 그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딸과 배우자를 잃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문학이 독자에게 일종의 대리 애도(vicarious mourning)를 허용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여기서 대리 애도란 독자가 타인의 상실을 텍스트를 통해 경험하며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처리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소설은 그 기능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합니다.
문학이 독자의 정서와 공감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들은 꾸준히 축적되고 있습니다. 서사 문학이 공감 능력과 정서 조절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들은 이미 학술적으로 보고되어 있으며(출처: 미국심리학회 APA), 『기차의 꿈』처럼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면서도 깊은 슬픔을 담은 소설이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24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 목록은 해당 소설의 문학적 위상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줍니다(출처: 뉴욕 타임스).
그레이니어의 삶은 상실감을 치유하지 못한 삶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낸 삶입니다. 그 차이가 작지 않다고 봅니다.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봄이 되어서야 등산객이 그의 시신을 발견하고, 의사가 삽으로 마당에 무덤을 팝니다. 아무도 그를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그는 거기 있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이 기차가 지나가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스스로의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됩니다. 절망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미리 알 수 없는 희망이 얼마나 잔인한 지도 압니다. 그러니 이 소설은 위로보다 질문에 가깝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하고.